울진·남양주·서울까지 전국 유산 14건 피해
복구까지 장기화 전망

다리가 내려앉고, 조선왕릉의 나무가 부러졌다. 짧은 시간 동안 쏟아진 집중호우가 도심을 마비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수백 년 세월을 견뎌온 국가유산에도 상처를 남겼다.
관광객의 발길이 잦던 역사문화관은 침수됐고,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왕릉 숲에서는 전나무와 소나무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단순한 비 피해가 아니라, 시간과 공들여 보존해 온 문화유산의 원형 훼손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더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여름철 여행 수요가 몰리는 7월, 국내 곳곳의 유산지로 발길을 옮기려던 관광객들에게도 일정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울산, 남양주, 서울, 충남 등 전국 각지에서 문화재 피해가 확인된 가운데, 당분간 일부 유적지에서는 복구 작업과 안전 점검이 이어질 전망이다.
주말마다 가족 단위 방문이 잦은 유적지들인 만큼 현장 대응과 관람객 안전조치가 시급하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만 14건이지만, 여전히 강우 예보가 남아 있어 추가 피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연의 힘 앞에서 역사마저 무력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 상황이다. 전국 문화유산 피해 상황과 후속 조치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전국서 국가유산 14건 피해… 울산 삼호교 일부 붕괴, 출입 통제
“국가유산청, 위기경보 ‘경계’ 단계 발령”
국가유산청은 7월 21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이번 집중호우로 인한 국가유산 피해가 전국적으로 총 14건 발생했다고 밝혔다. 전날 같은 시각에 집계된 8건보다 하루 새 6건이 추가됐다.
피해 유형 중에서는 사적이 7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국가등록문화유산 3건, 보물 2건, 국보와 명승이 각각 1건씩 포함됐다. 지역별로는 충남이 4건으로 가장 많고, 경기도 3건, 서울과 전남이 각 2건, 울산·경북·경남이 각 1건으로 확인됐다.
피해 양상은 주로 토사 유실, 수목 피해, 시설물 파손 등이다. 구체적으로는 전체 피해 사례 중 7건이 토사가 무너지거나 유실된 경우였고, 수목 피해가 4건, 시설물 파손이 3건이었다. 토사 유실의 경우 향후 추가 붕괴 우려가 커 긴급 복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다. 경기도 남양주의 광릉에서는 전나무 2그루와 소나무 2그루가 쓰러졌고, 왕릉 유적을 관리하는 관리동, 역사문화관, 화장실, 주차장 등이 침수됐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쓰러진 나무를 제거하고 조속한 복구를 위해 현장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같은 지역의 홍릉과 유릉에서는 소나무 1그루가 부러졌고, 서울 태릉과 강릉에서는 측백나무 1그루, 서울 정릉에서는 참나무 1그루가 각각 넘어진 것으로 보고됐다.
수령이 긴 나무들이 많고, 경사 지형에 조성된 조선왕릉 특성상 호우 피해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양주에서는 국가등록문화유산인 봉선사 큰법당도 피해를 입었다. 법당 뒤편 소나무가 전도되며 건물 외벽 일부를 훼손했으며 현재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다.
봉선사는 문화재 관람과 종교시설이 결합된 공간이어서 평일에도 관람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추가 붕괴 우려로 안전조치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접근에 주의가 필요하다.
울산에서도 문화재 피해가 보고됐다. 1924년에 건립된 울산 구 삼호교는 최근 내린 집중호우로 일부 구간이 내려앉아 출입이 전면 통제된 상태다.
울산소방본부에 따르면 7월 20일 오후 8시 30분께 교각 일부가 무너졌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현장 확인 결과 다리 중간 부분이 침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 지역에는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최대 330mm가 넘는 강우가 집중되면서 도로와 하천 곳곳에서 침수와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국가유산청은 “교각 침하와 상판 균열이 함께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양방향 출입을 차단하고 차단막을 설치한 상태”라고 밝혔다.
국가유산청은 현재 국가유산 위기경보를 ‘경계’ 단계로 상향해 운영 중이다. 위기경보는 일반, 주의, 경계, 심각의 네 단계로 구분되며, 현재는 전국 문화재 보호에 대한 비상대응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청 관계자는 “2차 피해와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응급조치를 우선 시행 중이며, 추가 피해 방지를 위해 현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번 집중호우는 단순한 일시적 피해에 그치지 않고, 문화유산의 보존 환경 자체에 경고를 던진 사례로 평가된다.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장소도 자연재해 앞에선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