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 베었더니 급사… 민간신앙 깃든 미스터리한 은행나무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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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추천 여행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황성훈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나뭇가지를 자른 순간, 주지는 급사했다. 이후 절은 폐허가 되었고, 그 일화는 수백 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병이 돌던 해에도 이 마을만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말도 전해진다.

나라가 혼란에 빠질 때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칡넝쿨이 거대한 나무를 휘감았다는 증언도 남아 있다. 처음엔 우연이라 여겼지만, 마을 사람들은 일찍이 이 나무가 ‘그저 그런 나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마을 뒤편, 산자락에 서 있는 이 은행나무는 단순한 경관 수목이 아닌, 오래전부터 공동체의 재난을 막아온 신목이었다.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기던 시기에 뿌리를 내렸고, 신라와 고려, 조선까지 시대의 굴곡을 견디며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황성훈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1,000년의 세월을 품은 이 살아 있는 전설, 민간신앙이 깃든 미스터리한 은행나무 여행지로 떠나보자.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높이 23미터·수령 1,000년 생물, 무료 개방 중”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황성훈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 148-1번지 일대에 위치한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고목으로,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제307호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높이 23미터, 가슴높이 둘레 8.62미터에 달하는 이 나무는 백제 성왕 16년인 서기 538년에 심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백제가 사비로 천도하던 시기, 좌평 맹씨가 직접 이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구전은 마을 주민들 사이에 지금도 생생히 전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 나무는 수려한 외형 외에도 수세기를 거쳐 내려온 신비로운 전설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다. 고려시대에는 숭각사의 주지가 암자 보수에 사용할 목적으로 이 나무의 가지를 베어간 뒤 급사한 사건이 구전되고 있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그 후 사찰은 폐허가 되었고, 이 일화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목을 훼손한 대가로 받아들여졌다.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이 은행나무를 함부로 다루지 않았고, 오히려 마을을 지키는 신목으로 삼아 정성을 다해 보호해 왔다.

재난을 예고하는 나무로도 유명하다. 과거 나라가 혼란에 빠지기 전이면 어김없이 칡넝쿨이 이 나무를 휘감았다고 한다. 마치 자연이 보내는 경고처럼 이 나무는 시대의 균열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과학적 설명이 어려운 현상이 반복되며 사람들은 자연스레 나무에 경외심을 품게 되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지역 문화 속에 깊이 스며 있다.

생물학적으로도 천 년 가까이 살아온 나무는 드물다. 거센 비바람과 기후 변화를 이겨낸 이 은행나무는 단순한 경관용 수목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친 민간의 보호 노력과 전승 문화가 녹아든 생명의 유산이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황성훈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나무 주변을 황금빛 융단처럼 덮어 방문객들에게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시기에는 마을 전체가 가을빛으로 물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한참을 머무르게 만든다.

가을의 끝자락, 은행잎이 마지막 황금을 뿌리는 이 시기. 천 년의 세월을 품은 나무 아래에서 시간의 무게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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