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간 충돌 잦은 ‘화약고’
인천시장, 세계지질공원 지정에 협조 촉구

전 세계 229곳. 이 숫자에 대한민국의 이름이 한 줄 더해질 예정이었다.
인천시 옹진군의 백령도·대청도·소청도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 흔적 화석과 신원생대 변성 퇴적암 등 독보적인 지질학적 자산을 바탕으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 심사를 받고 있었다.
과학적 가치와 경관, 보존 체계까지 모두 갖춘 이 지역은 지질공원 지정이 ‘사실상 확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막판, 예기치 못한 벽이 등장했다. 단순한 행정 누락이나 기술 검토의 미비가 아닌, ‘국제 정치’가 끼어든 것이다. 심사 절차를 멈추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북한의 공식적인 이의 제기였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북한이 제기한 이의는 단순한 지질공원 지정 반대가 아니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민감한 외교 사안이라는 점에서 사태의 성격은 급변했다.
이제 백령·대청·소청도의 유네스코 등재 문제는 단순한 자연 보전이나 관광 개발 차원을 넘어섰다.
그 장소에서 벌어진 이번 갈등은 어떤 의도에서 비롯됐고, 어떤 파장을 남기게 될까.
북한 제동에 백령·대청도 유네스코 좌초 위기
“지질공원 등재, 누가 왜 막았나”
북한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정에 반발한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대청도·소청도는 남북 간 해상 충돌이 반복됐던 접경지역이다.
1999년 제1 연평해전을 시작으로 2002년 제2 연평해전, 2009년 대청해전,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굵직한 국지도발이 이 서해 5도 일대에서 발생해 ‘한반도의 화약고’라는 오명을 얻었다.
정부와 인천시는 이 지역의 긴장을 완화하고,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인천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 흔적 화석이 보존돼 있는 백령도·대청도·소청도의 지질명소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하려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세계지질공원은 지질학적으로 국제적 가치를 지닌 장소와 경관을 보호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보호구역이다.
현재 전 세계 50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으며, 총 229곳이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받았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청송, 무등산권, 한탄강, 전북 서해안, 단양, 경북 동해안 등 7곳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타국의 이의 제기로 세계지질공원 지정 절차가 보류된 사례는 국내에선 이번이 처음이다.
인천시는 백령도·대청도·소청도의 지질학적 잠재력이 충분해 세계지질공원 등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그동안 체계적인 준비 절차를 밟아왔다.
이 지역에는 10억 년 전 신원생대에 형성된 변성 퇴적암을 포함해 다양한 지질 유산이 분포돼 있고, 동아시아 지각 구조의 진화 과정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2019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북한이 어떤 이유로 이의를 제기했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인천시는 북방한계선(NLL)을 부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인천시장은 북한의 이의 제기가 알려진 지난 22일 “백령도와 대청도가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되면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지역경제에 큰 활력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반응은 유감스럽다”라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세계지질공원 지정과 관련해 이해당사국 간의 갈등이 해소될 때까지 심사 과정을 중단하도록 하고 있어, 지정 절차를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는 북한 측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인천시는 지난달 북한이 백두산을 세계지질공원으로 순조롭게 등재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아무런 이의 제기 없이 협조한 전례를 들어, 이번 사안 역시 북한과의 협의를 통해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천시장은 “북한은 백령도·대청도 세계지질공원 지정에 대해 불필요한 영토 분쟁으로 대응하지 말고, 더 큰 틀에서 협조해 주기를 바란다”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