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와 고요한 산책길이 주는 평화
단풍 대신 찾은 일상의 소확행
올해 단풍의 점수를 매긴다면 50점도 되지 않는다. 초록 잎으로 물든 나무가 절반, 단풍이 든 나무가 절반인 수준이다.
단풍이 고운 색을 내기 위해서는 차가운 기온과 큰 일교차가 필요한데, 올해 기상 관측 이래 가장 긴 더위가 지속되면서 나무가 단풍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늦더위에 지쳐 단풍 놀이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는 실망감만 안겨준 소식이지만, 가을에는 단풍 외에도 감상하기 좋은 풍경들이 많다.
9월부터 피어나는 억새와 댑싸리, 핑크뮬리의 향연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12월이 되면 고운 색을 내는 풀조차 시들어버리고, 황량한 겨울의 풍경만이 남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을 즐겨두어야 한다.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가보기 좋은 수도권 명소 2곳을 소개한다.
하늘공원
서울특별시 마포구 하늘공원로 95에 위치한 하늘공원은 월드컵공원 내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의 황폐한 땅을 자연으로 복원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하늘공원의 하이라이트는 가을에 은빛 물결을 이루는 억새밭이다. 10월 중순부터 11월까지 억새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며, 억새밭 사이로 난 산책로는 북한산, 한강, 서울 시내가 한눈에 펼쳐지는 전망을 선사한다.
또한 공원 곳곳에 설치된 전망 휴게소에서 가을의 청명한 하늘과 은빛 억새의 풍경, 그리고 푸른 한강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는 단풍 대신 붉게 물든 댑싸리도 함께다.
특히 해 질 녘 노을과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일몰 시간대에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샛강생태공원
서울 영등포구와 여의도를 가로지르는 샛강생태공원은 여의도 국회 뒤 샛강에서 가양대교 중앙까지 이어지는 구간에 자리해 있다.
이곳은 버드나무, 갈대, 억새 등의 군락을 이루며 한강 지류의 자연 환경을 최대한 보존하고 있다. 인근 지하철의 지하수를 활용해 조성된 계류 폭포와 연못 덕분에 자연 속 산책을 즐기기에 최적이다.
샛강생태공원은 특히 억새와 갈대가 만발하는 가을에 더욱 운치 있다. 초록이 점차 빛을 잃고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갈대와 억새는 한 폭의 수묵화 같은 고요한 풍경을 자아낸다.
6km에 달하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여유롭게 걷기에 좋으며, 천연기념물 황조롱이, 흰뺨검둥오리 등의 야생 조류와 다양한 토종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샛강다리에서 바라보는 공원 전경과 빌딩숲의 대비가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며, 일상 속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소확행의 장소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