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청과 강이 만든 밤의 미학

바람이 열기를 식히는 여름밤,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든다. 어두운 도심의 불빛과는 다른, 자연이 비춰주는 은은한 야경을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영남루는 더없이 어울리는 장소다.
시끄러운 음악이나 인공적인 조명 없이도 이곳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머물며 빚어낸 깊은 아름다움이 있다. 강물 위에 비치는 누각의 실루엣과 주변 풍경이 만들어내는 장면은 마치 오래된 동양화 한 폭을 눈앞에서 펼쳐 보는 듯하다.
조선시대의 멋과 고요한 자연이 어우러지는 이곳에서는 평범한 하루의 끝마저 특별한 밤으로 기억된다. 더욱이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가볍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밀양강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이 누각은 낮보다 오히려 밤에 그 진가를 드러낸다. 기와지붕에 달빛이 부딪히는 순간, 마치 세상이 멈춘 듯한 고요함이 찾아온다.
이처럼 고요한 감동을 선사하는 영남루는 낮보다 밤에 더욱 빛나는 정취를 간직한 곳이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영남루로 떠나보자.
영남루
“조선 3대 누각 ‘영남루’, 밤에 가야 하는 이유”
경남 밀양시 중앙로 324(내일동)에 자리한 ‘영남루’는 조선 후기 목조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누각이다. 처음 세워진 시기는 신라 경덕왕 시절로, 당시 영남사의 부속 건물로 존재했던 이 누각은 고려 공민왕 14년에 이르러 밀양부사 김주에 의해 대대적인 보수를 거쳤다.
이후 1844년 다시 한번 중건되며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 중 하나로 손꼽히며, 국보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가치도 높다.
누각이 자리한 곳은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변의 절벽 위다. 때문에 누각에 올라 바라보는 야경은 다른 지역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를 지닌다.
특히나 밤이 되면 조명이 아닌 달빛이 천천히 누각을 스치고, 그 그림자가 물 위로 드리워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여름 밤에도 이곳에 서 있으면 땀이 식고 마음까지 가라앉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단청으로 화려하게 채색된 목조 구조물은 조명을 받지 않아도 빛이 날 만큼 정교하고 아름답다.
영남루의 내부에는 퇴계 이황, 목은 이색, 문익점 등 조선의 명필들이 남긴 시문 현판들이 걸려 있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예술과 학문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이인재 부사의 두 아들이 11세와 7세의 나이에 쓴 ‘영남 제일루’와 ‘영남루’ 현판이다. 어린 나이의 손에서 탄생한 이 글씨들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서예가들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영남루 주변에는 다양한 문화 유적들이 모여 있어, 야경을 즐기며 함께 둘러보기에 제격이다. 단군과 고대 8왕조의 위패를 모신 천진궁, 아랑낭자의 전설이 깃든 아랑사당, 꽃처럼 피어난 석화 군락이 널린 앞뜰, 530년의 세월을 지켜온 밀양읍성까지 짧은 산책만으로도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 모든 풍경이 무료로 열려 있으며, 입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주차는 내일동 공영 노외 유료주차장과 삼문·내이 강변주차장(무료)을 이용할 수 있다.
낮에는 고즈넉한 정취를, 밤에는 빛이 스며든 시간을 만날 수 있는 영남루. 바람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그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매력을 지닌 누각으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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