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당일치기 여행지
입동(立冬)을 지나 소설(小雪)을 앞두고 있는 요즘, 단풍물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지역이 있어 여행객들은 심란하다.
늦가을로 인한 단풍지각부터 아예 물들지 않고 야속하게 떨어지는 녹빛 잎사귀까지, 올해는 그 발간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작정을 한듯하다.
그러나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가을이 내려앉은 은혜로운 모습을 만끽할 수 있다.
지금까지 녹음 짙은 가을풍경에 실망했다면, 국립서울현충원에 방문해 그 마음을 달래보도록 하자.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고 울긋불긋한 경관을 감상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국립서울현충원
우선 이곳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서울 동작구 현충로 210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은 나라를 위해 순국한 영령들이 안장된 국립묘지이자 민족의 성역이다.
뜻깊은 장소인만큼 명당에 자리해 있는데, 관악산의 ‘공작봉’을 주봉으로 광활한 능선이 현충원의 삼면을 감싸고 그 앞에 한강이 굽이쳐 도는 것을 보면 그 웅장함과 기세를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다.
부지 내에는 무용용사탑, 전쟁박물관, 현충관, 충렬대 등이 자리해 있다. 또 매년 6월 6일에는 현충일 추념식이 진행된다.
현충원은 매일 6~18시에 방문가능하며, 자차로 방문 시 이용할 수 있는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국립서울현충원 누리집(https://www.mpva.go.kr/snmb/index.do)을 참고하면 된다.
의외의 단풍명소
유독 하늘이 청명한 11월 13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수도권은 타 지역에 비해 단풍이 골고루 물들었다더니, 현충원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서 울긋불긋한 빛을 감상하며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태극기가 이어지는 길과 ‘현충일’, ‘6.25 참전용사’, ‘학도의용군’, ‘광복’, ‘통일’ 등의 문구로 이루어진 흰 펜스 담장이 맞게 도착했음을 알린다.
글자 하나하나를 읽으며 정문으로 향했다. 현충원 방문이 처음이라면 국립서울현충원 누리집에 게시된 안내도를 보며 이동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첫 방문이 아니더라도 해당 안내도를 보며 거닐면 길을 헤매지 않고 둘러볼 수 있으니, 사전에 확인할 것을 추천한다.
가장 먼저 정문과 가깝게 자리한 현충지로 발길을 옮겼다. 현충천이 흐르는 구름다리를 지나 위치한 연못 현충지는 사색하기에 좋은 명소였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흐르는 연못을 감상하며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니 묵은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듯했다.
또 현충지의 단풍은 그야말로 절정이었다. 울긋불긋한 색감은 가을의 낭만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번에는 현충문을 지나 현충탑 앞에 섰다. 현충탑은 사방을 수호하는 의미를 담아 십자형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탑의 앞쪽에는 향로와 제단이 있고 뒤쪽에는 헌시가 새겨져 있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이 헌시는 노산 이은상 선생이 짓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휘호한 것이다. 글귀에 살신성인하신 영령을 향한 존경이 느껴져 매우 인상적이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을 올린 후 황금빛이 내려앉은 은행나무길로 향했다.
겨레얼마당을 둘러싼 은행나무의 향연은 탁 트인 풍광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았다.
현재 은행잎이 떨어지는 추세라 아쉽긴 했으나, 서울 도심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기만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은행잎이 흩날리는 노란 순간을 촬영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800년 수령의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1100년 수령의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등 은행나무 명소는 전국 곳곳에 자리해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여느 곳이 부럽지 않았다.
호국보훈의 달은 아니지만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마음은 때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가을의 끝자락인 11월, 국립서울현충원에 방문해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가을의 정취를 만끽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