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 수목원 산책
고요 속에 빛나는 늦가을 풍경
올해 날씨는 봄부터 초가을까지 예측 불가였다. 봄에는 평년보다 따뜻해 벚꽃이 늦게 피더니, 가을마저 늦은 더위가 이어지며 단풍 시기도 예년과 달랐다.
그러다 11월의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며 비로소 가을의 깊이를 실감하게 되었다. 가을이 끝나기 전,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며 늦가을의 운치를 느끼기에 제격인 곳으로 떠나보는건 어떨까.
경기도 오산시 청학로 211에 위치한 ‘물향기수목원’은 수청동의 이름처럼 맑은 물을 배경으로 각양각색의 수생식물과 다채로운 테마 정원이 펼쳐진다.
2000년부터 조성해 2006년에 문을 연 이 수목원은 물을 좋아하는 식물들로 가득한 습지생태원, 수생식물원, 그리고 단풍나무원 등 19개의 주제원과 1,600여 종의 식물이 어우러져 늦가을의 정취를 더하고 있다.
깊어가는 늦가을의 청명한 날, 물향기수목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얕은 바람이 서늘하게 볼을 스치고, 그 위로 펼쳐진 풍경은 늦가을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수목원 곳곳에는 노란 은행나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이 짙은 황금빛을 뽐내며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눈부신 가을을 위한 무대처럼 보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란 잎들이 하늘 위에서 춤추듯 떨어져 내려 길바닥을 덮는 모습은 환상적이다. 발끝으로 밟히는 잎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계절의 특별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은행나무를 지나 메타세쿼이아가 곧게 서 있는 길에 들어서면, 눈앞에 펼쳐진 푸른빛이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채운다.
아직 물들지 않은 푸른 메타세쿼이아들은 늠름하게 하늘을 향해 서 있고,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초록의 싱그러움 속에 둘러싸여 마치 한여름의 숲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가을의 차분함 속에서도 이 푸른빛은 계절에 아랑곳하지 않는 생명의 힘을 보여주는 듯하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곳곳에 정성스레 가꿔진 국화들이 다채로운 색으로 피어 있다. 노란색, 분홍색, 자주색으로 만개한 국화들은 가을을 환영하듯 향기를 뿜어내며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특히, 모퉁이를 돌아 갈 때마다 나타나는 국화는 보는 이에게 작은 기쁨을 안겨주고, 시시각각 변하는 가을 햇살에 반짝이며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황홀하다.
물향기수목원은 가을뿐만 아니라 사계절 내내 다양한 매력을 지닌다. 하지만 늦가을의 이곳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평온함과 풍성함을 온전히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물을 좋아하는 식물들이 모여 있어 수목원 안 곳곳에는 작은 연못과 습지생태원도 자리하고 있다.
조용히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습지 생태원을 거닐며, 시간을 잊은 채 이른 아침의 서리가 물들인 풍경을 마주하고 있으면 자연이 선사하는 평화로움에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늦가을의 풍경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물향기수목원은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며 가을의 마지막 선물을 만끽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자연이 주는 색채와 향기 속에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계절의 변화를 천천히 음미하는 이 시간을 통해 마음 깊숙이 가을의 여운을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