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추천 여행지
항구와 눈물을 생각하는 섬

목포 삼학도공원은 지금 인공섬이다.
세 마리 학이 앉아 있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삼학도’라 불리는 이곳은 원래 자연섬이었지만 지금은 세 개의 섬을 연결하는 인공 수로가 흐르고 있다.
삼학도는 한때 육지와 연결되었다가 다시 섬으로 돌아온, 특이한 운명을 지닌 곳이다.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여러 번 모습을 바꿔온 장소다.
그리고 이곳에는 대한민국 대중가요의 전설적인 인물 ‘이난영’이 남긴 노래와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수많은 변화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된 삼학도, 과연 이곳에는 어떤 과거가 숨겨져 있을까?
대한민국 가요사의 전설, 이난영과 난영공원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데 / 부두의 새아씨 아롱젖은 옷자락 /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대중가요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이름이 있다. 바로 ‘목포의 눈물’과 함께 기억되는 이난영(1916~1965)이다.
그를 단순히 일제강점기 트로트 가수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1939~1940년 그가 부른 ‘다방의 푸른 꿈’, ‘항구의 붉은 소매’, ‘바다의 꿈’ 등에는 스윙재즈, 스캣 송, 블루스 등 서양 음악의 요소들이 담겨 있다.
그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아티스트였다.
또 걸그룹의 효시라 불리는 ‘저고리시스터즈’ 활동을 했으며, 전통 민요와 신민요, 뮤지컬 영화까지 넘나든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그러나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남편이자 유명 작곡가였던 김해송이 납북된 후,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가수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딸들과 조카를 모아 ‘김시스터즈’라는 걸그룹을 탄생시켰다. 지금으로 치면 아이돌 그룹을 기획하고 키워낸 프로듀서였다.
김시스터즈는 한국을 넘어 미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세계적인 쇼 프로그램 ‘에드 설리번 쇼’에 무려 22차례 출연했다.
이난영도 직접 쇼에 출연해 딸들과 함께 아리랑을 부르며 한국 음악을 세계에 알렸다.

경기 파주에 있던 이난영의 묘는 2006년 목포 삼학도공원으로 이장됐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장으로 조성됐으며, 현재 ‘난영공원’이라 불린다.
삼학도의 역사와 풍경
“아는 만큼 보이는 삼학도 이야기”

삼학도 역시 특별한 운명을 가진 섬이다.
세종 21년(1439) 목포진(鎭)에 있던 병사들이 배를 타고 땔감을 구하러 다녀가던 섬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의 손에 넘어갔다가 해방 후 다시 시민들에게 돌아왔다.
1968년 간척사업으로 삼학도는 육지가 되었고 항구가 들어섰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원래의 섬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복원 사업이 시작됐다.
기존의 부두 시설들이 하나둘 철거되었고, 세 개의 섬을 다시 물길로 연결해 인공섬으로 재탄생시켰다.

삼학도를 제대로 즐기려면 요트 계류장, 섬 안의 카페, 소삼학도에 조성된 포장마차촌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삼학도의 전경을 한눈에 담고 싶다면, 항구 건너편 목포진으로 가보는 것이 좋다.
목포진에 오르면 목포항과 삼학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목포시 문화관광해설사는 “목포는 배를 타는 길목이라 이난영의 노래 제목인 ‘목포는 항구다’ 문구가 특히 유명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삼학도는 그 섬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섬이라고 덧붙였다.
삼학도를 둘러싼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알고 나니,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가 새롭게 다가온다.

왜 하필 ‘목포의 눈물’이었을까. 이난영의 노래가 삼학도의 바닷바람을 타고 다시금 들려오는 듯하다.
봄이 되면 삼학도에는 튤립이 만개한다고 한다. 바람이 부는 날, 이곳을 거닐다 보면 튤립꽃 향기가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