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추천 여행지
항쟁의 역사

서쪽 바다의 남쪽 끝, 남해와 서해가 맞닿는 곳에 자리한 섬, 진도.
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간직해 왔다. 오랜 세월 동안 치열한 전쟁의 중심에 서 있었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진도인들의 강인한 삶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덕분에 진도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예술과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예향(藝鄕)’으로 불린다.
진도는 제주도와 거제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다.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건너 섬으로 들어서면 광활한 평야와 완만한 구릉이 펼쳐지며 섬이라는 느낌보다는 넉넉한 대지의 품을 떠올리게 한다.

거친 물살이 흐르는 울돌목이 진도의 첫인상을 강하게 남기지만 다리를 건너면 온화하고 부드러운 풍광이 맞아준다.
치열했던 전란의 흔적과 그 속에서 피어난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진도로 떠나보자.
명량해전의 현장, 울돌목과 전라우수영관광지
진도의 관문은 울돌목이다. 역사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이곳을 빼놓고 진도를 설명할 수 없다.

명량대첩(1597)의 현장이자 이순신 장군이 거센 물살을 이용해 조선 수군의 대승을 이끈 곳이 바로 이곳이다.
울돌목을 직접 체험하고 싶다면 전라우수영관광지를 방문하는 것이 좋다. 이곳은 명량대첩을 기념하는 공원으로, 해남과 진도 양쪽에서 각각 조성되어 있다.
양측 모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울돌목을 내려다볼 수 있으며, 바다 위로 길게 뻗은 스카이워크를 통해 거센 물살을 가까이에서 느껴볼 수도 있다.
해남 쪽 해안에서 울돌목을 바라보다 보면 바닷물 위로 검은 실루엣이 떠 있는 듯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것이 바로 ‘고뇌하는 이순신 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밀물이 차오르면 발목까지 물에 잠겨 마치 물 위를 걷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는데, 이는 명량해전을 앞두고 홀로 깊은 고민에 빠졌던 장군의 모습을 상징한다.
벽파진 전첩비와 피섬의 역사
진도에서 명량대첩의 흔적을 찾으려면 벽파진으로 향해야 한다.

작은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언덕 위에 세워진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가 나타난다.
이곳은 조선 수군이 일본군과 맞서 싸운 치열한 격전지 중 하나로, 명량대첩 이후에도 전투가 지속되었던 곳이다.
전첩비를 지나 대교 쪽으로 올라오다 보면 작은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피섬’이다. 명량대첩 당시 전사한 일본군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승리의 기쁨 이면에는 무수한 희생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소로, 이곳에서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를 떠올려보게 된다.
정유재란 순절묘역과 왜덕산의 이야기
진도에서 일본과의 전쟁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벽파진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이동한 곳에 ‘정유재란 순절묘역’이 있다.

이곳에는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의 침략으로 희생된 조선인들의 무덤이 모여 있다.
총 232기의 무덤 중 조응량, 조명신, 박헌 등 일부 인물들의 무덤만이 알려져 있으며, 나머지는 이름 없는 무덤들이다.
이곳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명량대첩 당시 조선 수군과 싸우다 전사한 일본군들의 시신이 내동리 마을까지 떠내려왔는데, 이를 가엾이 여긴 주민들이 ‘왜덕산’에 묻어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며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고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묘역을 떠나며, 그 위로 살아 있는 사람과 스러져간 이들의 시간이 함께 쌓여간다는 생각이 든다. 진도는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섬이다.
올봄, 단순한 전쟁의 기억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삶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진도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