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월 추천 여행지

하나의 나무가 한 마을의 기록이 될 수 있을까. 줄기는 텅 비고, 가지는 부러졌지만, 천 년의 시간을 꿋꿋하게 견딘 은행나무가 있다.
누군가는 그 가지로 관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밤마다 이 나무 아래에서 아이의 총명을 빌었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이 나무를 신목으로 여기며 정월이면 새해를 기원하러 모인다.
단풍철이 다가오면 이 오래된 생명체는 다시 한번 온몸을 노랗게 태우며 계절을 맞는다.
지금은 잠잠하지만, 단 1~2주 후면 황금물결이 나무를 감싸기 시작한다. 거대한 가지 사이로 빛이 내려앉고, 정자 옆으로 떨어지는 낙엽이 땅을 덮는다.

자연과 민속, 생물학과 믿음이 하나의 줄기에서 피어난 이 나무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신묘한 은행나무, 단풍 시즌마다 방문객 몰려”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 329-8번지에 위치한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는 추정 수령 약 1,000년으로, 높이는 24.3미터, 가슴높이 둘레는 13.2미터에 이른다.
이 나무는 오랜 세월 마을 공동체와 함께 살아온 천연기념물로, 현재까지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줄기는 썩어 속이 비어 동굴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과 동쪽으로 뻗은 가지는 이미 오래전에 부러졌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이 부러진 가지로 밥상을 만들고 관 37개를 제작해 나눠 가졌다고 전해진다.
500여 년 전, 이 마을에 살던 오씨 성을 가진 인물이 전라감사로 재직할 당시 나무 아래 정자를 지었고, ‘은행나무 정자’라는 뜻의 ‘행정(杏亭)’이라 불렀다.

이 이름은 이후 금산 일대의 명칭으로도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행정헌(杏亭軒)’이라는 육각형 정자가 나무 옆에 남아 있다. 이 나무에 얽힌 민속 신앙도 적지 않다.
밤중에 나무 아래 세워두면 아이가 총명해진다거나, 잎을 삶아 먹으면 해소병이 낫고, 정성을 다해 기도하면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이 지금까지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나라에 큰일이 생기기 전 이 나무가 ‘소리로’ 알려준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실제로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음력 정월 초사흗날 자정이 되면 이 나무 아래 모여 새해의 복을 기원했다. 단순한 생물학적 생존을 넘어, 사람들의 기억과 전통, 삶의 태도가 켜켜이 스며 있는 공간이다.

국가적으로도 이 나무의 문화적·생물학적 가치를 인정해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별도의 관람 시설 없이 원형 그대로 공개되고 있다.
나무 하나가 하나의 문화 공간이 된 사례로서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사례다.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는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관람은 무료다. 10월 넷째 주 기준, 나무의 색은 아직 초록에 가깝지만, 예년 기록에 따라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가 단풍 절정기로 예상된다.
오래된 나무에서 피어나는 황금빛 가을을 만나고 싶다면, 금산의 천연기념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