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월 추천 여행지

천년 전, 이 땅에 또 하나의 왕국이 있었다. 고려보다 앞서 남부를 장악했던 후백제, 그 도읍지는 지금의 전주였다.
그러나 찬란했던 궁궐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무너진 성벽과 이름 없는 터뿐이다.
그럼에도 이곳에 서면 사라진 역사의 숨결이 산 능선을 따라 되살아난다.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 연꽃무늬 기와가 묻힌 왕궁터, 조용한 산속 사찰과 함께라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과거를 향한다.
올겨울, 바람이 깎아낸 산길을 오르다 보면 후백제의 왕도, 그 실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천년고도 전주, 후백제의 왕도를 찾아서 떠나보자.
동고산성·동고사
“1.7km 산성길과 고대 왕궁 유적, 조용한 산사까지 한 코스로 연결”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 산25에 위치한 ‘동고산성’과 ‘동고사’는 후백제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역사 유적으로, 전주의 역사적 기원을 간직한 장소다.
동고산성은 포곡식 산성 형태로 쌓은 성곽으로, 둘레만 1,712미터에 이르는 대규모 산성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세운 왕궁터가 승암산 중턱에 발굴되었으며 당시 발굴된 수막새에는 ‘전주성’이라 새겨져 있어 이곳이 후백제의 실제 궁궐 터였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총 188칸 규모로 확인된 이 건물은 단일 고대 건축물로는 국내 최대 수준이다.

산성을 따라 걷는 길은 단순한 트레킹을 넘어 전주의 역사와 지형을 체감할 수 있는 여정이 된다. 서문지에서 시작해 왕궁터를 지나면 이정표가 나온다.
중바위와 기린봉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중바위 방향은 바위가 많은 능선을 지나며 전주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이 펼쳐진다.
기린봉 방향은 비교적 완만한 코스로, 겨울철 가벼운 산행에 적합하다. 특히 정상 부근 전망대에서는 한옥마을, 전주천, 모악산까지 시야가 확장돼 트레킹 이상의 감흥을 전한다.
산성 아래 자리한 동고사는 전주를 지키던 사고사찰 중 하나다. 동·서·남·북 사찰 중 동쪽을 맡았던 동고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됐다가 1844년에 현재 위치에 중창되었다.

대웅전, 염불원, 석탑, 동고사사적비 등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으며 진입로 양옆으로는 대숲과 수목이 울창하게 드리워져 산사의 정취를 더한다.
진입 갈림길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 왼쪽 산길을 오르면 사찰과 불상, 돌탑이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진다.
자연과 전통이 겹겹이 쌓인 이 구간은 걷는 이의 마음까지 다독인다.
동고산성과 동고사는 모두 연중무휴로 개방되며 입장료는 없다. 치명자산 성지 주차장을 이용해 진입할 수 있고, 사계절 내내 트레킹과 역사 탐방이 모두 가능한 장소다.

올겨울, 조용히 걷다 보면 천년의 시간을 품은 땅 위에 후백제의 기운이 아직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역사와 풍경이 만나는 이 길 위에서 천년의 왕도를 따라 걸어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