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품은 구례 산동 산수유마을
천 년의 꽃이 피어나는 시간

봄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남녘, 그중에서도 지리산 자락 아래 구례 산동 산수유마을은 노란 물결로 물든다.
3월이 되면 전국 산수유나무의 70%가 자란다는 이곳에는 매년 100만 명이 넘는 상춘객들이 몰려든다.
하지만 올해는 개화가 늦어져 산수유 축제 이후 7일이 지난 3월 말에 되어서야 산수유가 만개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4월 둘째 주까지도 절정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눈부신 노란색으로 계곡과 마을을 물들이는 산수유꽃은 매화와 벚꽃보다 먼저 피는 ‘봄의 전령사’다. 꽃말은 ‘영원불멸의 사랑’. 그 뜻처럼 마을 곳곳은 봄날 사랑에 빠진 듯하다.
구례 산동면에 자리한 산수유마을은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를 맞으며 따뜻하게 피어나는 꽃으로 계절의 시작을 알린다.
마을을 둘러싼 지리산 차일봉과 만복대, 성삼재의 설경이 아직 남아 있는 가운데, 골짜기마다 피어난 산수유는 마치 노란 수채화를 뿌려놓은 듯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마을에는 산수유꽃을 따라 걷는 5개 코스, 총 12.4km의 산수유길이 조성돼 있다. 가장 인기 있는 1코스는 산수유 사랑공원에서 산수유 문화관, 반곡마을, 지리산나들이 장터를 잇는다. ‘꽃 담길’이라 불리는 이 구간은 흐드러지는 꽃 사이를 걷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언덕 위 사랑공원에 오르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꽃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골짜기 밑 평지에 들어선 반곡마을은 봄이 오면 산수유로 뒤덮여 꽃 대궐이 된다.
5코스에서는 한국 최초로 심어진 산수유나무도 만날 수 있다. 수령 1천 년이 넘은 이 나무는 ‘할머니 나무’로 불린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오래전 중국 산동성에서 시집온 한 여인이 어머니의 당부와 함께 가져온 산수유 묘목이 이 나무의 시초라 한다.
이곳은 또한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의미 깊은 길이기도 하다.

구례의 산수유 농업은 척박한 산간지대에서 시작된 고된 삶의 산물이다. 돌을 골라낸 자리에 묘목을 심고, 그 돌로 담을 쌓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농업방식은 2014년 국가중요농업유산 3호로 지정됐다.
봄에는 꽃이, 가을에는 약재가 되는 열매가 이 마을을 살려왔다. 이곳의 산수유는 ‘대학 나무’로도 불렸는데, 열매 몇 상자면 자녀의 학비를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봄철뿐 아니라 가을에는 붉은 열매가 탐스럽게 익고, 겨울에는 그 위로 눈이 소복이 내려앉는다. 사계절 내내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마을의 산수유 열매는 약재로도 명성이 높다.
신장 기능 개선, 항염, 노화 방지 등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구례의 토양과 기후 덕분에 품질도 으뜸이다.

산수유 축제가 끝나갈 무렵에는 섬진강과 서시천을 따라 벚꽃이 만개해 4월 중순까지 꽃 잔치가 이어진다.
‘벚꽃 라이딩’ 명소로 불리는 자전거길 50km와 함께 남도의 꽃길은 광양의 매화, 하동의 벚꽃과 연결되며 봄 여행의 중심이 된다.
지금 이 순간, 구례는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삶과 역사, 치유와 추억이 함께 어우러지는 꽃 마을. 천 년의 시간을 살아온 산수유는 오늘도 그렇게 노란 사랑을 피워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