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나들이 코스
가을의 끝자락인 11월, 나무들이 비로소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단풍이 소복이 쌓인 산책길은 세월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하다.
그중 시간이 멈춘 듯 장엄한 궁궐은 가을의 정취와 단풍의 경관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명소다.
울긋불긋한 단풍 사이로 고운 햇살이 드리우는 궁궐, 창경궁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창경궁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185에 위치한 ‘창경궁’은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경운궁), 경희궁(경덕궁)과 함께 ‘조선시대 5대 궁궐’로 꼽힌다.
창경궁은 1418년 세종이 태종을 위해 창건한 ‘수강궁’이 있던 자리다.
이후 1483년 성종이 세 명의 대비(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덕종의 왕비 소혜왕후, 예종의 왕비 안순왕후)를 위해 수강궁을 크게 확장하고 그 이름을 창경궁이라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는 등 아픈 역사를 겪었으나 창경궁은 자리를 지키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이름이 비슷해 많은 이들이 혼동하는 창경궁과 창덕궁은 별개의 궁이다. 조선시대에는 ‘동궐'(東闕)이라는 하나의 궁궐로 묶여 왕실 가족들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현재 창경궁은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둘러싸여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다.
그 설렘을 누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11월 7일, 그 현장으로 떠나보자.
창경궁 단풍코스, 이렇게 즐겨보세요
필자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 : 교화를 돈독하게 하는 문)을 이용해 입장했다.
돈화문으로 입장하면 창덕궁과 창경궁을 잇는 함양문을 통해 자유롭게 드나들며 관람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내국인 만 25세~만 64세 기준으로 창덕궁은 3천 원의 입장료가, 창경궁은 1천 원의 입장료가 들며 그 외의 경우는 모두 무료로 입장 가능하다.
돈화문을 지나면 매우 많은 관람객들을 만날 수 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외국인 가족, 친구들과 친목여행을 온 시니어 관람객, 진지한 표정으로 가을을 담는 사진작가, 서로를 찍어주는 대학생 등 남녀노소 모두가 이곳에서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
관람객의 웃음꽃이 본격적인 여정에 앞서 설렘을 더한다.
탁 트여 있어 산책하기 좋은 길을 거닐면 봄꽃 못지않은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다. 그 비경이 가을의 정취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가을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명소는 동궐 곳곳에 자리해 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원한다면 창경궁 ‘춘당지'(春塘池)로 떠나보자.
춘당지는 현재 두 개의 연못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원래는 뒤쪽의 작은 연못이 조선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이다.
본래의 춘당지 앞쪽에 자리한 큰 연못터는 왕이 농사짓는 의식을 행했던 내농포가 있었던 곳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감상하면 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쾌청한 하늘과 단풍물이 든 나무, 그 모든 풍경을 거울처럼 비추는 연못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춘당지는 현재 창경궁 최고 인기 스폿이니, 사람이 비교적 적은 오전시간대에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춘당지를 따라 거닐다 보면 울긋불긋한 단풍 속에서 ‘대온실'(大溫室)을 만나볼 수도 있다.
대온실은 1909년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를 유리로 둘러싼 독특한 외형을 자랑한다.
준공 당시에는 열대지방의 관상식물과 희귀 식물을 전시했으나 1986년 창경궁 복원 이후에는 국내 자생 식물을 전시하고 있다.
가을이 내려앉은 지금, 조선의 기억을 간직한 창경궁은 붉게 타오르는 나무와 고즈넉한 정경, 청명한 하늘을 품으며 관람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도심 속에 위치한 창경궁에서 세월을 넘나드는 특별한 단풍 여행을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