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대여 급증한 관광지
전통과 트렌드 사이에서 갈라진 평가

서울 도심에서 반짝이는 치마 자락이 고궁 담벼락을 스친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특히 여름과 가을철 관광 성수기에는 고궁 일대가 형형색색의 옷차림으로 가득 찬다.
하지만 이들이 입은 옷을 두고 ‘과연 이것이 한복인가’라는 의문이 다시 제기된다. 관광 상품으로 각색된 이른바 ‘퓨전 한복’이 전통 의상의 정체성을 흐리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동시에, 사용되지 않는 문화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맞선다. 이러한 논쟁은 단순한 디자인 차원을 넘어 한국 전통문화의 소비와 보존 방식을 다시 묻고 있다.

한복 착용이 활발한 고궁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에 대한 입장들은 어떻게 나뉘는지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입기만 하면 무료지만… 정체성 두고 논란 계속되는 국내 인기명소
젊은 층 “예쁘면 그만” vs 전문가 “틀은 있어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경복궁 일대에서는 최근 몇 년간 외국인 관광객의 한복 착용이 급증했다. 2024년 7월 기준으로 서울을 찾은 외국인은 136만 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고궁을 방문하며 한복 대여를 이용한다. 궁궐 입장 시 한복을 착용하면 무료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유산청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경복궁을 포함한 주요 궁궐을 한복 착용으로 무료 입장한 관람객은 총 172만 명에 달한다.
하루 평균 4천700명가량이 한복을 입고 고궁을 찾고 있는 셈이다. 다만 대여점에서 제공하는 의상은 대부분 금박 장식이 강조된 비단 옷감, 시스루 저고리, 리본 장식 등으로 구성된 퓨전형이다.
전통 한복과 구조·소재 면에서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정체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현장을 찾은 외국인들은 퓨전 한복의 화려함을 장점으로 꼽는다. 대만 관광객 린진위는 “편하진 않지만 디자인이 만족스럽다”라고 말했으며, 미국인 제니는 “덥긴 하지만 매우 예쁘다”라고 언급했다.
대만인 팅은 “다들 입고 있어 자연스럽게 따라 입게 됐다”며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라고 말했다. 실제 경복궁 주변 대여업체는 하루 평균 수백 명의 외국인 손님으로 붐비고 있다.
한 대여업자는 “전통 한복보다 금박이 들어간 반짝이는 디자인이 훨씬 인기가 많다”라고 전했다. 한복 착용이 단순한 관광체험을 넘어, 고궁 앞 사진 촬영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문화계와 일부 시민 사이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한국 전통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종로구청은 지난 2018년 시스루 저고리나 짧은 치마 등 지나치게 변형된 의상에 대해 제한 조치를 검토한 바 있다.

당시 구청장은 “한복이라 부르기 어려운 수준까지 왜곡돼 안타깝다”라고 밝혔다. 2024년에는 문화재청장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SNS에 올라오는 퓨전 한복의 상당수는 실제 한복과 맞지 않는다”며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퓨전 한복 금지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고, 국가유산청은 현재 별도의 규제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해당 기관은 “한복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고, 고궁에서의 착용 경험이 한복 대중화에 기여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격과 제작 과정도 논란의 일부다. 일반 한복은 2시간 기준 2만 원, 4시간은 2만 5천 원 수준으로 대여되며 프리미엄 상품은 1만 원가량 더 비싸다.
일부 매장은 1시간 기준 9천 원에서 시작한다. 저렴한 가격대의 의상은 중국산 원단을 사용하거나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 많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대여업계 관계자는 “광장시장에서 원단을 사 와서 직접 제작한다”라고 밝혔으며 “플라스틱처럼 느껴지는 소재는 대부분 중국산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가격 경쟁이 심화되면서 소재의 질이 낮아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한복을 바라보는 시각은 세대에 따라 다르게 갈린다. 대학생 A 씨는 “사라지지 않으려면 사용돼야 한다”라고 말했고, 취업준비생 B 씨는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반면 직장인 C 씨는 “전통을 단순한 코스튬처럼 소비하는 방식은 아쉽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SNS상에서는 “한복 구조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퓨전 한복이 오히려 한복을 살리는 중이다” 등 의견이 엇갈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입장은 나뉜다. 한복 디자이너 황이슬은 “생활한복과 체험한복은 각각의 영역에서 공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한복인 박술녀는 “근본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변화해야 하며 우리 옷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지금의 논의는 단순한 옷차림을 넘어 한국 문화의 미래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