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빚고 비행기가 떠난 자리
빌딩 숲 사이 피어난 벚꽃
멈추지 않는 섬의 변신

봄바람이 불면 서울 시민의 발길은 약속이라도 한 듯 여의도로 향한다. 한강의 시원한 바람과 흐드러진 벚꽃, 그리고 마천루가 어우러진 풍경은 언제 찾아도 매력적인 도심 속 여행지다.
그런데 우리가 돗자리를 펴고 여유를 즐기는 이 평화로운 공원이, 불과 수십 년 전에는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뜨던 활주로였다는 사실을 아는 여행자는 드물다.
심지어 비가 오면 지도에서 지워지던 모래섬이 어떻게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었을까. 벚꽃잎 흩날리는 산책로 아래 잠들어 있는 흥미로운 반전의 역사를 따라, 익숙한 여의도를 새롭게 걷는 여행을 시작한다.
사라지는 모래섬에서 하늘길의 중심으로
지금은 서울의 핵심 업무 지구로 꼽히지만 과거의 여의도는 지도 위에 점 하나를 찍기도 애매한 곳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여의도를 강 한가운데 형성된 하중도로 정의하며 조선 시대에는 양화도나 나의주 등으로 불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곳은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고 수위가 낮아지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범람원 형태의 섬이었다. 즉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 땅은 본래 사람이 정착해 살기 위한 곳이 아니라 강물이 잠시 쉬어가던 쉼터였던 셈이다.
물에 잠기던 이 척박한 땅은 근대에 들어서며 서울의 하늘을 여는 관문으로 변모했다. 서울시 공식 미디어허브에 남아 있는 자료를 보면 1929년 4월 여의도 비행장이 개장하며 비행기가 뜨고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시의 팽창과 함께 공항의 기능은 점차 축소되었다. 1958년 여객 업무가 김포공항으로 넘어가면서 여의도의 하늘길은 점차 좁아졌다.
서울 열린정보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공군기지마저 1971년 현재의 성남 서울공항인 경기도 광주군으로 이전하며 비행장은 완전히 폐쇄되었다.
지금 우리가 벚꽃을 보며 걷는 그 길은 한때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질주하던 활주로였다. 흩날리는 꽃잎 아래에는 아스팔트 활주로의 기억이 층층이 쌓여 있는 것이다.
도시의 욕망이 채워 넣은 빌딩과 벚꽃
비행기가 떠난 빈자리는 곧바로 개발이라는 거대한 물결로 채워졌다. 서울역사아카이브 컬렉션은 전후 복구 시기를 지나 서울이 급격히 팽창하던 때에 한강 종합 개발과 맞물려 여의도 개발이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고 설명한다.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거지를 넘어 서울의 새로운 도시 기능을 실험하는 거대한 무대로서 여의도는 빠르게 빌딩 숲으로 변해갔다. 모래섬이었던 과거와 활주로였던 역사를 지우고 그 위에 금융과 정치의 중심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덧입힌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을 이 섬으로 불러모으는 가장 강력한 유인책은 단연 벚꽃이다. 하지만 이 낭만적인 풍경조차 철저한 계획과 관리의 산물이다.
서울문화포털의 축제 안내 자료는 여의도 봄꽃축제의 핵심 구간인 국회 뒤편 여의서로 1.7km에 왕벚나무 1,886주가 식재되어 있다고 구체적인 수치를 명시한다.
영등포구청이 주최하는 이 축제는 자연적으로 피어난 꽃을 즐기는 것을 넘어 나무의 숫자와 길의 길이까지 관리되는 고도로 기획된 도시 이벤트다.
멈추지 않는 변신의 리듬
여의도를 즐기는 방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 낮 시간에는 인파로 붐비는 윤중로를 걷다가 국회 뒤편에서 여의도공원 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적함을 즐기는 것이 좋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이면 한강공원으로 내려가 강바람을 맞는 것이 이 섬을 온전히 느끼는 방법이다. 벚꽃 아래에서 느끼는 느긋한 속도와 강변에서 마주하는 물의 속도는 전혀 다르다.
이 섬이 본래 물의 흐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도시가 만들어낸 출퇴근의 바쁜 리듬과 자연이 보여주는 개화의 느린 리듬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
여의도가 가진 진정한 매력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설계된 도시라는 점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의 용도를 바꿔온 유연함에 있다.
쓸모없던 모래섬은 비행장이 되었고 비행장이 떠난 자리는 빌딩 숲이 되었다가 봄이면 가장 느린 산책길로 변신한다. 우리가 여의도 벚꽃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꽃이 아름다워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 섬이 겪어온 치열한 변신의 역사를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목격할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