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도 ‘석탑’도 아니다? 아직도 정체 논쟁 중인 가을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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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김지호 (산청 전 구형왕릉)

높이 쌓인 돌층계 아래, 가야 마지막 임금의 흔적이 남아 있다. 피라미드를 닮은 이 무덤은 평지가 아닌 산 중턱에 자리해 시선을 붙잡는다.

이름보다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무덤인지, 석탑인지 오랜 논쟁의 대상이었다. 일반적인 봉분과 달리 단층 구조의 석단 위에 조성돼 있어, 무덤의 형식조차 기존 틀에 맞지 않는다.

가야사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김유신의 증조부 무덤’이라는 설명에서 의외성을 느낄 수 있다. 외부와 단절된 깊은 산속도 아니고, 문화재로 화려하게 복원된 장소도 아니다.

하지만 1500년 가까운 세월을 이겨낸 석물들은 지금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오히려 당시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김지호 (산청 전 구형왕릉)

이색적인 돌무덤을 통해 가야의 마지막 왕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도 의미 있다. 경사진 언덕 위 기단식 석단으로 구성된 구형왕의 무덤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산청 전 구형왕릉

“조선 문헌에도 등장한 미확정 고분, 지금은 무료 관람 가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김지호 (산청 전 구형왕릉)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구형왕릉로에 위치한 ‘산청 전 구형왕릉’은 가야 10대 임금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석축 무덤이다.

구형왕은 521년 가야 왕위에 오른 후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이양하기까지 11년간 재위했으며 신라 명장 김유신의 증조부로 알려져 있다.

무덤은 돌로 계단식 구조를 이루고 있는 형태이며 전체적으로 타원형 정상부를 갖춘 구조적 특징을 보인다.

평지에 조성된 피라미드식 계단 구조와는 달리, 비탈진 산기슭 경사를 활용해 축조됐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김지호 (산청 전 구형왕릉)

이 무덤에 대해 조선시대까지도 석탑인지 왕릉인지 해석이 갈렸다.

비슷한 형태의 유적이 안동과 의성 지방에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석탑으로 보기도 했고, 『동국여지승람』 산음현 산천조에는 ‘돌로 쌓은 구룡이 있으며 4면이 모두 층을 이루고 세속에는 왕릉이라 전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왕릉설에도 무게가 실린다.

‘구형왕’이라는 명칭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 문인 홍의영의 『왕산심릉기』로, 인근에 있던 왕산사라는 사찰에서 구전돼 내려온 내용을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특히 무덤의 중앙에는 ‘가락국양왕릉’이라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앞쪽에는 석물도 배치돼 있다. 다만 이 시설물들은 최근 설치된 것으로, 본래부터 있던 유물은 아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김지호 (산청 전 구형왕릉)

기존 명칭은 ‘전 구형왕릉’이었으나, 2011년 7월 ‘산청 전 구형왕릉’으로 공식 변경 고시되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7단의 석단은 무덤이 아닌 석축 건물로 오해받기 쉬울 정도로 입체적이며 자연 지형을 따라 조성돼 무덤의 형식에 대한 기존 인식을 확장시킨다.

이곳은 연중무휴로 개방되며 입장료는 없다. 현장에는 별도 안내소는 없지만 기본적인 안내 시설과 주차 공간이 마련돼 있다.

현존하는 가야 왕릉 유적으로 확인된 사례가 극히 드문 가운데, 역사성과 구조적 특이성을 동시에 갖춘 이곳을 10월과 11월,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돌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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