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추천 여행지
수천 년 전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한 사람의 산책이 한 나라의 역사가 되는 순간이 있다. 단풍이 절정을 향해가는 10월 중순, 단순한 풍경 그 이상을 기대하는 이들이 찾아야 할 곳이 있다.
지금은 푸른 숲이지만, 2주 후면 성벽 위로 붉고 노란 단풍이 겹겹이 내려앉는다. 그 안에는 백제의 왕성, 고려의 전투, 조선의 항전이 켜켜이 쌓여 있다.
유사시 수도 기능까지 담당했던 성곽 안에는 12km에 달하는 석축과 250칸의 행궁 흔적이 남아 있다. 병사 1만 명 이상을 수용했던 성안은 이제, 고요한 산책길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이름을 남겼다.
단풍철에만 누릴 수 있는 이 유산의 진가, 혼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오롯이 걸음으로 경험할 수 있다.
가을의 끝자락, 역사와 풍경을 동시에 담을 수 있는 이곳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남한산성도립공원
“조선 시대 행궁·성벽 따라 걷는 12km 코스, 무료 개방 중”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731에 위치한 ‘남한산성도립공원’은 백제 시조 온조의 왕성이었던 터로,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주장성으로 기능했고 조선 광해군 때 본격적으로 석축 성곽으로 축성됐다.
산 전체를 따라 이어진 성곽의 총길이는 약 12.4km로, 본성 8.9km, 외성 3.2km, 신남산성 0.2km로 구성되어 있다. 성벽의 높이는 7.3m이며, 큰 돌을 아래에, 작은 돌을 위로 쌓는 전통적 석축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성곽에는 동·서·남·북의 4대 문과 함께 16개의 암문, 4곳의 장대가 있었으며 이 중 동문, 남문, 서장대는 현재까지도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내부에는 수어청과 관아, 창고, 행궁이 조성됐고, 유사시 왕이 사용할 수 있도록 상궐(73칸), 하궐(154칸), 좌전(26칸) 등 총 252칸 규모의 행궁이 마련됐다.
행정기관과 군사시설 외에도 80개의 우물과 45개의 샘이 성안에 조성됐으며 광주읍의 행정기능까지 산성 안으로 이전되었다.
1639년 인조 17년, 성이 완공된 직후 첫 기동 훈련에는 1만 2,700명이 참가했을 정도로 국가적 전략 요충지로서의 위상을 지녔다.
현재 성내에 남아 있는 건물은 많지 않지만, 동문·남문·서장대·연무관·지수당·현절사·숭렬전 등 일부 건축물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수어장대와 숭렬전은 당시 국왕의 항전 의지를 상징하는 중심 건축물로 역사적 의미가 깊다.
지금은 도립공원과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가을이면 성벽과 숲 사이로 단풍이 내려앉아 역사유적과 자연 풍경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산책 코스로 주목받는다.
길게 이어진 성곽을 따라 걷는 길은 비교적 완만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어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는 도심 속 산책형 트레킹 코스로 적합하다.
남한산성도립공원은 상시 개방되며, 유적 중 남한산성 행궁은 4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11월부터 3월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이며 관람은 무료다. 주차공간은 현장에 마련되어 있어 자가용 이용이 가능하다.
올가을, 역사와 단풍이 만나는 시기에 백제의 흔적을 따라 남한산성도립공원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