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월 도심 역사문화 여행지

화려한 상점과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도심 한복판에서 120년 넘는 시간을 지켜온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붉은 벽돌 외벽과 하늘을 향해 솟은 첨탑은 주변의 현대적인 거리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지금은 익숙한 서양식 성당이지만 건립 당시에는 매일 사람들이 구경하러 찾아올 만큼 낯선 모습이었다. 약 45m 높이의 종탑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 ‘뾰죽집’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곳의 가치는 건축미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공간인 동시에 1970~1980년대에는 시민과 학생들의 피신처 역할을 하며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현장이 됐다.
내부에서는 자연광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살펴볼 수 있고, 지하로 내려가면 서점과 카페 등이 들어선 문화복합공간도 이어진다. 별도의 관람료가 없어 도심 나들이 중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종교와 건축, 근현대사가 한 장소에 겹겹이 쌓여 있어 짧은 관람에서도 살펴볼 이야기가 많다. 1898년 완공된 고딕 건축과 한국 현대사의 흔적을 함께 만날 수 있는 도심 역사문화 명소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명동성당
“약 45m 첨탑 아래 1898년부터 이어진 고딕 건축과 근현대사의 현장”

서울 중구 명동길 74에 위치한 명동성당은 대한민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서울대교구 주교좌 성당이자 국가 지정 사적 제258호다. 1977년 사적으로 지정됐으며 한국 천주교의 역사와 근현대사의 흔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성당 건립의 역사는 18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미수호조약 체결 이후 종교의 자유가 일부 허용되자 당시 교구장이던 블랑 주교가 종현이라 불리던 일대를 성당 부지로 매입했다.
왕실의 영희전과 가깝다는 이유로 착공이 지연됐지만 1892년 정초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공사가 진행됐다.
당시 국내에는 서양식 건축 기술자가 없어 벽돌공과 목수, 미장이 등을 중국에서 초빙했다. 프랑스 출신 코스트 신부가 설계와 공사 감독을 맡았으며 재정난과 청일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어려움도 겪었다. 코스트 신부가 별세한 뒤 프와넬 신부가 공사를 이어받았고 1898년 5월 29일 축성식이 거행됐다.

건축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순수 고딕 양식의 연와조 건물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약 45m 높이의 종탑과 라틴 십자가형 평면 구조를 갖췄으며 붉은 벽돌과 화강석이 어우러진 외관이 특징이다.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들어오는 자연광에 따라 서로 다른 색감을 보여준다.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도 이곳에 남아 있다. 특히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과 학생들의 피신처 역할을 하면서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종교시설을 넘어 천주교와 건축, 근현대사를 함께 살펴보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도 의미가 있다.
광복 이후 종현본당에서 명동본당으로 명칭이 변경됐으며 1947년과 1973년 보수공사가 진행됐다.
1981년부터는 한국 천주교 창설 200주년을 맞아 스테인드글라스와 지붕 동판 등을 교체했고, 2002년부터 진행된 추가 보수를 통해 종탑과 외벽 벽돌, 내부 시설도 정비됐다.

성당 지하에는 문화복합공간인 1898광장이 마련돼 있다. 서점과 카페, 기념품점 등이 있어 성당을 둘러본 뒤 쉬어가기 좋으며 주변 번화가와 가까워 식사나 쇼핑 일정과 연결하기도 편리하다.
관람료는 무료다. 평일에는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개방하며 토요일은 오후 8시, 일요일은 오후 10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종교시설인 만큼 미사가 진행되는 시간에는 내부에서 정숙을 유지하며 관람하는 것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