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추천 여행지

천년 고도의 유적을 조금 다르게 여행하고 싶다면 역사 기록뿐 아니라 그 장소에 전해지는 설화를 함께 살펴볼 만하다. 신라에는 죽은 왕의 혼령과 한 여인 사이에서 태어나 귀신을 다스렸다는 기묘한 인물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주인공은 비형랑으로, 도깨비를 시켜 하룻밤 사이 큰 돌다리를 만들고 나랏일을 맡길 인재를 귀신 가운데 추천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이 설화의 시작에는 신라 제25대 왕과 도화녀가 등장한다. 왕은 생전에 도화녀를 마음에 두었으나 남편이 있던 그녀의 뜻을 꺾지 못했고, 세상을 떠난 뒤 혼령이 되어 다시 나타났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이후 태어난 아이가 비형랑이라는 이야기로 연결되면서 왕릉 역시 단순한 고분을 넘어 설화의 출발점을 찾아가는 역사 여행지가 된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9월에는 소나무 숲과 신라 왕릉을 천천히 걸으며 이런 옛이야기를 따라가기에도 좋다. 신라의 역사와 기묘한 설화가 한자리에서 겹쳐지는 왕릉 여행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진지왕릉
“죽은 왕의 혼령에게서 아이가 태어났다?”, 비형랑 설화의 시작을 따라 걷는 9월 왕릉 여행

경주시 서악동 산92-1에는 신라 제25대 진지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진지왕릉이 자리한다. 선도산 자락에 들어선 왕릉 주변으로 소나무 숲이 형성돼 있으며 서악동 삼층석탑도 가까이에 있다.
이곳을 이해하는 핵심 가운데 하나가 비형랑 설화다. 진지왕은 도화녀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당시 그녀에게는 남편이 있었다. 도화녀가 지조를 지키면서 왕은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진지왕은 폐위됐고 그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시간이 흘러 도화녀의 남편이 죽자 진지왕의 혼령이 그녀를 찾아와 머물렀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비형랑이었다고 전해진다.
비형랑의 이야기는 탄생부터 범상치 않다. 그는 밤마다 귀신들을 다스리는 신비로운 인물로 묘사된다. 도깨비를 부려 하룻밤 사이에 큰 돌다리를 놓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나라에서 일할 사람을 귀신 가운데 골라 추천했다는 내용도 전해진다. 이 때문에 비형랑 설화를 알고 왕릉을 찾으면 평범한 고분 관람과는 다른 시선으로 공간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 진지왕릉으로 전해지는 능은 울창한 소나무가 주변을 감싸고 있어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둘러볼 수 있다. 화려한 시설이나 체험 프로그램보다 왕릉과 숲, 설화를 함께 살펴보는 역사 산책에 적합한 곳이다.
다만 진지왕의 실제 능 위치를 둘러싼 다른 견해도 존재한다. 무열왕릉 뒤편에는 서악동 고분군이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자리하는데, 이 고분군 가운데 가장 앞쪽에 있는 무덤을 진지왕릉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현재 전해지는 왕릉을 둘러볼 때는 이러한 학술적 이견까지 함께 알아두면 신라 왕릉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행 동선 역시 왕릉 하나에만 한정할 필요가 없다. 가까운 서악동 삼층석탑과 서악동 고분군을 함께 살펴보면 신라 왕릉과 고분이 밀집한 서악 일대의 역사적 특징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무더위가 물러나기 시작하는 9월은 야외 유적을 걸어서 둘러보기 좋은 계절이다. 특히 진지왕릉은 유적 자체의 규모보다 그곳에서 시작되는 비형랑의 기묘한 설화가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유명한 문화유산도 그 안에 얽힌 한 편의 옛이야기를 알고 찾으면 전혀 다른 장소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이번 9월에는 소나무 숲에 자리한 왕릉에서 출발해 죽은 왕과 도화녀, 귀신을 다스렸다는 비형랑의 흔적을 따라 신라의 조금 낯선 이야기를 걸어보자.















그 설화 속 비형랑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현대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특정 시기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면 그 기록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