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월 도심 사찰 여행지

화려한 요정으로 이름을 알렸던 공간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무소유’의 정신을 품은 사찰로 바뀌었다. 시작부터 일반적인 고찰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가진 곳이다.
한때 이곳의 대지와 건물을 소유했던 김영한 여사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후 당시 시가 1,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대원각의 대지와 건물 전체를 아무런 대가 없이 시주했고, 그 뜻을 바탕으로 1997년 사찰이 창건됐다.
경내에서는 또 하나의 특별한 만남이 기다린다.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가 제작한 관세음보살상이 자리하고 있어 불교와 천주교라는 서로 다른 종교가 예술을 통해 맞닿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법정 스님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도 남아 있다. 친필 원고와 소박한 유품은 물론 스님이 직접 만든 투박한 나무 의자까지 전시돼 있어 그가 이야기했던 무소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경내를 충분히 걸은 뒤에는 한옥 처마 아래에서 차와 책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거액의 보시로 시작된 사찰의 역사부터 종교를 뛰어넘은 예술, 법정 스님의 흔적까지 한자리에서 만나는 도심 사찰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길상사
“1,000억 원이 넘는 대원각을 조건 없이 내놓은 보시에서 시작된 사찰, 무소유와 종교 화합의 흔적을 걷는 곳”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26길 68에 위치한 길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오랜 세월 이어진 고찰과 달리 1997년 12월 창건됐으며,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과 김영한 보살의 보시가 사찰의 시작과 깊게 연결돼 있다.
이곳은 과거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다. 소유주였던 김영한 여사는 법정 스님의 저서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은 뒤 당시 시가 1,000억 원이 넘는 대지와 건물 전체를 대가 없이 시주했다.
이후 길상사는 법정 스님이 이끌던 시민운동 단체 ‘맑고 향기롭게’의 근본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의 흔적을 모두 지운 것은 아니다. 대원각 시절 사용됐던 한옥 건물들이 사찰의 전각으로 바뀌면서 일반적인 사찰과는 다른 공간 구성을 보여준다. 화려했던 요정이 수행과 사색을 위한 장소로 변화했다는 점도 길상사의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경내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관세음보살상이다. 불교 신자가 아닌 천주교 신자이자 조각가인 최종태 교수가 종교 간 화합을 염원하며 제작했다.
온화한 얼굴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도 느낄 수 있어 서로 다른 종교를 뛰어넘는 포용의 의미를 담은 작품으로 소개된다.
조금 더 안쪽으로 걸으면 법정 스님이 생전에 머물며 집필했던 진영각에 닿는다. 현재 이곳에는 스님의 유골이 모셔져 있으며 영정과 친필 원고, 생전에 사용했던 소박한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그중에서도 직접 땔감을 모아 만든 단순한 나무 의자는 법정 스님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다. 화려한 장식 없이 투박하게 만들어진 물건을 통해 글로 전했던 무소유의 정신이 실제 생활에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경내 산책을 마친 뒤에는 다라니다원에서 쉬어갈 수 있다. 기존 길상사도서관 공간을 새롭게 단장한 북카페로, 한옥 처마 아래에서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으며 머물 수 있다.
길상사는 수백 년 된 전각의 연대보다 한 공간이 어떻게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됐는지를 살펴보는 재미가 큰 사찰이다.
대원각에서 사찰로 이어진 변화와 김영한의 보시,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 천주교 조각가가 만든 불상까지 차례로 알고 걸으면 곳곳에 남은 이야기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