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추천 여행지

한때 당대의 부유층과 권력층이 드나들던 고급 요정이 사찰로 바뀐 곳이 있다. 당시 시가 1,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대지와 건물을 소유자가 아무런 대가 없이 내놓으면서 공간의 운명이 완전히 달라졌다.
화려했던 한옥들은 수행과 명상을 위한 전각으로 다시 쓰였고, 그 중심에는 ‘무소유’를 이야기했던 법정 스님의 정신이 자리 잡았다.
경내에는 불교 신자가 아닌 천주교 신자 조각가가 제작한 관세음보살상도 있어 종교 간 화합이라는 이례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법정 스님이 생전에 머물며 글을 쓰던 공간에서는 친필 원고와 유품을 통해 그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다. 산책을 마친 뒤에는 한옥을 활용한 북카페에서 차와 책을 즐기며 쉬어갈 수도 있다.

과거의 화려함을 비워낸 자리에 전혀 다른 가치가 채워진 도심 속 사찰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길상사
“1,000억 원 넘던 요정이 통째로 사찰이 됐다”, 무소유와 종교 화합의 반전이 숨어 있는 도심 산사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26길 68에 위치한 길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다른 고찰처럼 수백 년 전 창건된 사찰은 아니지만 공간이 만들어진 과정과 그 안에 담긴 인물들의 이야기가 특별하다.
이곳은 과거 유명 요정이었던 대원각에서 출발했다. 대원각의 소유주였던 김영한 여사는 법정 스님의 저서 《무소유》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당시 시가 1,000억 원이 넘는 대지와 건물 전체를 대가 없이 시주했다.
이후 1997년 12월 길상사가 창건됐으며 법정 스님이 이끌었던 시민운동 단체 ‘맑고 향기롭게’의 근본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 요정으로 사용됐던 공간을 허물고 완전히 새로운 사찰을 만든 것도 아니다. 기존 한옥 건물 상당수가 수행 공간과 전각으로 바뀌면서 과거의 건축적 흔적과 현재의 사찰 풍경이 함께 남았다.

화려한 유흥 공간이었던 장소가 검소함과 수행을 강조하는 사찰로 변했다는 점에서 공간 자체가 길상사의 역사를 보여준다.
경내에서 특히 눈여겨볼 것은 관세음보살상이다. 불상을 제작한 인물은 천주교 신자이자 조각가인 최종태 교수다. 서로 다른 종교 사이의 벽을 허물고 화합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아 제작했다.
일반적으로 접하는 불상과는 인상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관세음보살의 온화한 표정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연상시키는 자애로운 분위기도 느낄 수 있어 불교와 천주교의 이미지가 한 작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특정 종교를 넘어 포용과 공존이라는 길상사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경내를 더 깊숙이 걸으면 법정 스님과 관련된 진영각을 만난다. 법정 스님이 생전에 거처하며 집필 활동을 했던 공간으로, 현재는 스님의 유골이 모셔져 있다.

생전에 남긴 영정과 직접 작성한 친필 원고, 소박한 유품도 전시돼 있어 《무소유》를 비롯한 그의 글을 접했던 사람이라면 더욱 관심 있게 둘러볼 만하다.
특히 법정 스님이 직접 땔감을 모아 만든 단순하고 투박한 나무 의자가 눈길을 끈다. 값비싼 물건이나 화려한 장식 대신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고 살아가려 했던 그의 생활 방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물이다.
길상사의 탄생 과정까지 함께 생각하면 ‘무소유’라는 말이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공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찰 관람 이후에는 경내의 다라니다원에서 쉬어갈 수 있다. 기존 길상사도서관 공간을 새롭게 단장해 운영하는 북카페로, 한옥의 분위기 속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창밖으로 숲을 바라보며 잠시 머물 수 있어 사찰 산책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좋다.

9월은 한여름의 짙은 녹음이 아직 남아 있으면서 조금씩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시기다. 한옥 처마와 숲이 어우러진 경내를 천천히 걷고 진영각과 관세음보살상을 살펴본 뒤 다라니다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여유로운 도심 여행을 구성할 수 있다.
화려했던 요정에서 무소유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사찰로, 천주교 조각가의 손끝에서 불교의 관세음보살상으로 이어지는 길상사의 이야기는 반전의 연속이다.
이번 9월, 멀리 떠나지 않고도 한 사람의 보시와 한 수행자의 철학, 두 종교의 화합까지 한자리에서 만나는 특별한 산사 여행을 즐겨보자.















풀소유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