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복싱 레전드 박종팔
투자 실패로 그동안 번 90억 날려
1977년 프로에 데뷔하여 IBF, WBA 슈퍼 미들급 챔피언에 오르고 총 전적 46승 1무 1무효 5패를 기록한, 한국 복싱계의 전설로 불리는 박종팔이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여 권투선수 은퇴 이후의 삶과 최근 근황에 대해 전했다.

박종팔은 MBN 예능 프로그램 ‘국대는 국대다’에서 자신보다 35살 어린 현역 복싱 챔피언과 경기를 진행, 비록 판정패 했지만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안겼으며 건강한 모습을 보여 팬들을 안심시켰다.
전성기 시절인 1987년 당시에 파이트머니가 1억 5천만원 이상일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던 박종팔이 은퇴할 때 보유하고 있던 재산은 어마어마했는데, 수십 개의 부동산을 포함하여 약 90억원 정도나 되었다.
하지만 도전했던 사업이 실패로 끝나고 투자 사기를 당하는 등 순탄치 않던 삶을 보내면서 모은 돈을 모두 날리게 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내와 사별까지 하면서 안좋은 선택을 할 뻔 했다 고백했다.

1977년 프로 선수로 데뷔한 박종팔은 1년만인 1978년, 최창백을 상대로 3라운드 KO승을 따내면서 대한민국 미들급 챔피언 타이틀 쟁취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처음 복싱에 입문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유제두 선수가 치뤘던 시계 타이틀매치를 보게 되면서였다고 한다.
그 때 중학생이었지만 바로 복싱 체육관을 찾아가 힘든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훈련하였고 이후 강한 펀치력을 이용해 챔피언 타이틀 뿐만 아니라, 18 연속 KO승도 기록하게 된다.
아시아권 내에서는 적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동의 펀치력이었는데, 이 기록은 26 KO승을 따냈던 백인철의 기록 다음으로 국내 2위이다.
하지만 체격이나 골격 등이 해외 선수들과 차이가 나서 세계 무대 도전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신설된 복싱협회 IBF에 진출하고, 슈퍼 미들급에 도전한다. 당시 슈퍼미들급의 초대 챔피언은 미국의 머레이 서덜랜드였는데, 84년도에 한국에서 열린 타이틀 매치에서 맞붙는다.
초반에는 다운을 당하는 듯 어려운 모습을 보였지만 11라운드에서 KO승을 따내, 월드 챔피언에 등륵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후에도 8차례나 이어진 방어전을 승리로 장식하면서 전성기를 보냈다.

이 당시 받았던 수익에 대해 박종팔이 말하길, 1980년대 월급이 30만원~40만원 정도 였는데 국내 복싱 챔피언 경기의 파이트머니는 약 1천만원 정도나 되었다고 한다.
더불어, 미국 원정 경기를 뛰게 되면 1억 5천만원의 파이트머니가 지급되기에, 당시 타이틀전이 잡히는 경우 아내 명의로 부동산 계약을 진행했다 밝혔다. 하지만 나중에 국세청에서 진행한 부동산 투기 단속에 잡혀, 자신이 복싱선수를 하다가 언제 죽을지 몰라 자식과 마누라를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해명하는 일이 있었다 전했다.
이렇게 열심히 모았던 재산 90억으로 술집을 차리거나 부동산에 투자했지만, 결과는 좋치 않았다. 경험이나 기술없이 강남에 연 술집이 망하고, 기획 부동산으로 유인해 사기를 친 사람들로 인해 28개나 가지고 있던 부동산을 허무하게 잃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건강도 악화되고 삶의 의욕도 잃었는데, 당시 전 부인까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안좋은 선택을 하고 싶은 충동도 느꼈었다고 밝혔다. 다행히 현 부인을 만나 재혼을 하면서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었고, 이후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지내게 된다.
인생 3라운드를 진행하고 있는 박종팔은 2018년에 체육관 등 가지고 있던 가게 등을 정리한 후 불암산 건강 힐링센터에서 재혼한 아내와 지내고 있다.

2022년 유명 유튜버인 김계란의 ‘피지컬 갤러리’에 복싱 컨텐츠의 감독으로 출연하고 생활체육대회 출전을 목표로 제자도 양성하면서 다시 한번 활동을 재개했다.
2022년 4월에는 MBN의 ‘국대는 국대다’ 프로그램에서 현역 WBC 아시아 웰터급 실버챔피언 ‘정민호’ 선수와 이벤트매치를 치뤘다. 결과는 박종팔의 패였지만, 6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당한 실력을 선보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경기를 준비하면서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관중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감동을 선사해 기립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